25살부터 시작해서 올해 4학년을 통과하고 합격소식을 접하기까지 시작한 나이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결혼과 출산 암과의 투병 그리고 잦은 수술 등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내 작은 소망은 언제 어디서나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기가 안쓰러워 “그래 나도 다시 공부하는거야. 아이가 졸업할 때 같이 졸업장을 받자”라는 생각으로 와이제이에 전화해서 책을 사고 강의를 들으며 힘찬 소망의 끈을 풀어 나갔다.
그렇지만 20대와 달리 40살이 넘어 다시 잡은 책은 ‘검은 것을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로다’였다. 읽어도 읽어도, 들어도 들어도 왜그리 어려운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의 유혹이 자주 있었지만 3학년 남은 과정을 시험보게 되었고 한 과목 과락으로 다시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살림하랴, 고등학생 챙기랴, 마흔에 낳은 늦둥이 키우느라 또 핑계 아닌 핑계로 미루다 대학졸업을 눈앞에 둔 큰아이를 생각하며 “그래, 정말 마지막으로 같이 졸업 해야겠다”
는 결심을 하고 올 3월 다시 와이제이의 문을 두드리고 전에 사두었던 책과 강의를 짬짬이 해 나갔다.
회사를 갈 때, 버스 타는 시간도 아끼고, 길거리를 걷는 시간도 아끼고, 집안일 하는 중간 중간, 국 끓는 그 시간마저도 가스레인지 옆에 책과 이어폰을 가지고 닫힌 뇌를 깨어 가며 쉴 틈 없이 나를 채찍질 했고, 그 결과 3학년 남은 과목을 통과하고 천천히 공부해 내년에 4학년을 보려 했는데 상담해주시는 분이 일단 열심히 해서 시험이라도 한 번 보라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정말 밥 먹는 시간 화장실에 가는 시간마저 책과 강의를 몸에 끼고 다니면서 노력한 결과 뜻하지 않는 좋은 결과로 오늘에 이르렀다.
25년만의 쾌거였다.
남편도 친구도 이제 와서 그 나이에 어디 일하는데 써 먹을 것도 아니고 뭐하러 힘들게 하느냐고 격려보다는 실망스런 말들이 많았지만 내 꿈에 대한 소망은 그것들을 다 이겨냈다.
이때 문득 한비야의 1그램의 용기가 생각났다.
내가 해보고 싶은 일, 오랫동안 마음먹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할까 말까 망설일 때 하고자하는 용기 1그램이 앞으로 한 발짝 내딛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녀는 50대50으로 하고 싶은 마음과 두려움이 팽팽할 때 용기가 필요한 순간 단 1그램만 하고 싶은 마음 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용기야 말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난 그보다 훨씬 두려움과 실패가 많을 수 있고, 나이도 많고, 한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해냈다. 행복해졌다. 5년간의 새로운 도전과 인내와 노력의 결과라서 내게는 더욱 값지고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누가 나에게 방해하는 말을 해도 나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꿈에 대한 작은 소망이 이젠 가슴속에서 ‘펑’하고 터지면서 남은 삶에 대한 자신감과 여유 있는 시간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간들이 어제와는 다른 날들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매일 아침 보는 햇빛이 더 사랑스럽고 겨울임에도 더 따스하고, 한가할 수 있는 여유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달아본다.
홀로 서울서 대학 다니는 큰딸에게 합격소식을 맨 먼저 축하받으며 문득 전화할 때 마다 공부한다고 짧게 통화 했었는데 이제는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참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축하한다고 늦둥이 딸이 사준 따뜻한 덧신을 신으며 코끝이 찡하다.
나는 거울을 보며 내게 말한다 “잘 했어, 수고했어, 난 내가 자랑스러워”라고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거나 하고 있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꿈꾸고, 하고 싶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는 1그램의 용기와 도전정신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늘 제가 필요할 때 도움이 되어주신 와이제이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