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건대 지난 몇 년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대입 수능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았고, 지난 중고등학교 시절 우수한 성적을 받았던 것에 기대가 컸던 부모님은 물론 나 자신도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재수 생활을 재도약의 기회가 아닌 방종의 기회로 여겼다. 그 결과 그 이듬해에 본 수능도 마찬가지로 기대 이하였다. 결국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수험 생활을 1년 연장했고, 그 해에는 소기의 성과를 거둬 H 대학 어문 계열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은 이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 해 내가 가고 싶었던 Y 대학에 합격 직전까지 갔다가 떨어진 것에 아쉬움이 남은 데다, 원치 않는 전공으로 들어간 것에 대한 불만, 동기생들보다 2년이나 늦게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결과를 얻은 것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간판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련만, 저때의 나는 참 어렸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나는 만족을 얻지 못했고, 결국 한 학기를 채 못 채우고 자퇴서를 내고야 말았다. 애초에 내가 원하던 전공이 한국보단 서구에서 더 발전한 학문이니, 아예 본고장에서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환상에 가까운 생각으로 무작정 학교를 그만둔 것이다.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한국을 떠났지만, 유학 생활도 채 반년을 못 채우고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다. 집에서 예상치 못했던 재정 문제가 발생하여 도저히 유학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그야말로 내 신세는 낙동강 오리알이었다. 나이는 스물셋이 되었지만 이루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퇴한 학교는 다시 들어갈 수 없었고, 대입을 다시 하자니 나이도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그 지겨웠던 지난 과정을 되풀이하기가 싫었다. 경솔하게 자퇴한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우연히 신문에서 YJ 학사고시 광고를 보시더니 독학사 시험을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돌이켜보니 그때가 내 인생의 동아줄이라도 잡은 시기인 것 같다. 독학사에 대해 조사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었다. 국가공인 학위인 독학사를 취득하게 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4년제 학위와 똑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독학사로 학사편입을 시도 할 수 있고, 대학원에 진학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1년 안에 독학사와 편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심정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교재는 YJ에서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모두 제공하니 다른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1단계에서 한 과목에서 흔들렸던 것을 제외하면 4단계까지 과정은 순조로웠다. 국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한 때 문학청년을 꿈꿨기에 국문학 분야에 필요한 여러 책을 읽었고, 그로 인해 기본적인 지식이 있었던 것이 적잖이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독학사의 좋은 점은 오로지 교재 하나만 완독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학원을 다닐 필요도, 강의를 따로 들을 필요도 없었다. 재수 생활에서 겪은 시간적, 재정적, 심적 손실을 독학사를 하는 과정에선 전혀 경험하지 않았다. 오로지 교재 하나만 붙잡고 공부했고 1년 만에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12월 3일, 학위 과정을 통과되었음이 알게 되자 이제야 무엇 하나 이루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지난 4년간, 수험 생활, 짧은 대학생활, 유학 생활을 경험하면서 결국 이뤄놓은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마침내 한 가지를 이루게 된 것이다. 1년전 이 무렵 우연히 YJ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쯤 그 지겨웠던, 대입 과정을 다시 준비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가능성이 희박한 유학의 끈을 다시 붙잡고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이는 끝이 아님을 내 자신이 잘 안다. 이 수기를 쓰고 있는 지금, 대학 편입고사를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바로 3년 전에 아쉽게 떨어졌던 그 대학에 재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독학사를 취득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올해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올 한해 독학사를 공부했던 과정을 내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고 싶다. 앞으로 다시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게 되고, 또 학자가 되겠다는 내 목표를 이루게 된다면, 올 한 해가 성공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심정에 와닿는, 다음의 말로 이 글의 끝을 맺을까한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끝의 시작도 아니다. 아마도, 이것은 시작의 끝이리라. (This is not the end. It is not even beginning of the end. But it is, perhaps, the end of the beginning) - 윈스턴 처칠, 1942년 11월 북아프리카 전선이 영국의 승리로 끝난 후에.
